2023년 04월 23일 일요일
[백] 부활 제3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부활 제3주일입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차분히 살펴볼 때입니다.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어떤 어려움과 슬픔이 있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우리 삶의 순간순간에 살아 숨 쉬기를 청하며,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체성사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합시다.
입당송 시편 66(65),1-2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2,14.22ㄴ-33
화답송시편 16(15),1-2ㄱ과 5.7-8.9-10.11(◎ 11ㄱ 참조)
제2독서
<여러분은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해방되었습니다.>1,17-21
복음 환호송루카 24,32 참조
복음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24,13-35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빛이신 주님, 주님 부활을 기뻐하는 온 교회를 살펴 주시어, 교회가 인류의 발전과 공동선을 위하여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온 세상에 주님을 전하게 하소서.
2.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지속적인 경제 발전 속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저희 나라를 굽어살피시어, 저희가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3. 노숙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저마다의 사정으로 가정을 떠나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보호하시어,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게 하시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찾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4.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의 주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기쁘게 맞이한 저희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새 희망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며 더욱더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루카 24,3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우리 삶에는 의욕을 잃는 순간이 적지 않습니다. 먹고살 일이 막막하게 느껴져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동행하심으로써 절망 속에서 희망이 자라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우리의 힘겨운 길들은 주님의 말씀 안에서 그분을 만남으로써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멀리서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시라 우리의 길에 함께하시며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시는 가장 가까운 길벗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읍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에 관한 이야기를 부활 제3주일의 ‘복음’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루카가 전하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 이야기’를 듣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명의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부활 증인’입니다.
주간 첫날, 여인들이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한 날에(24,1-12 참조)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약 1.1km)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두 제자가 걸어갔던 그 길은 ‘그릇된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어야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장소로,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실 터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여 예루살렘을 떠났던 것입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는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다가가시고 나란히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부활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성경 말씀을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때는 그분께서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그들은 ‘올바른 길’로 돌아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지어 피하려던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등지고 걷는 길 위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수난과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을 떠나 ‘그릇된 길’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