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04일 목요일
[백]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68(67),8-9 참조
본기도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13,13-25
화답송시편 89(88),2-3.21-22.25와 27(◎ 2ㄱ 참조)
복음 환호송묵시 1,5 참조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13,16-20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마태 28,20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계시된 하느님의 이름(“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다스려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처럼 풍랑 치는 바다를 잠재우실 때도(마태 14,27 참조), 당신을 믿도록 백성을 설득하실 때나(요한 8,24.28 참조) 최고 의회에서 심문받으실 때도(루카 22,70 참조), 언제나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와 하나’이신 당신의 신원을 깊이 의식하셨습니다.
죽음이 가까웠음을 아신 주님께서 시편 말씀을 들어(41[40],10 참조) 유다의 배반을 미리 알려 주신 것은, 제자들에게 배신당하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당신에게서 ‘힘없는 하느님’이 아닌 “나는 있는 나”이신 전능하신 하느님을 올바로 바라보도록 사랑하는 제자들을 미리 준비시키신 일이었습니다.
몸을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이 그분께 수치와 굴욕이 아니었던 것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깊은 자의식에서 온전한 자유와 사랑으로 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죄로 벌거벗은 원조에게 가죽옷으로 수치심을 가려 주신 아버지의 그날처럼, 주님께서는 오해와 무지와 배반으로 때 묻은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심으로써 인간을 향한 성부의 사랑과 구원 의지를 온전히 보여 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원 경륜의 정점에서 사명을 완수하고서도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라며 종보다도 더 낮은 이로서 겸손을 보여 주었습니다(제1독서 참조). 주인의 발을 받쳐 들어 더러움은 씻어 내고 상처에는 기름을 발라 주는 종의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섬기며 겸손하게 살아간다면, 우리도 반드시 주님처럼, 나를 세상에 파견하신 ‘아버지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