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02일 금요일
[녹] 연중 제8주간 금요일 또는
[홍]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 순교자
입당송 시편 18(17),19-20
본기도
제1독서
<우리의 선조들은 자비로워 그 이름이 대대로 살아 있다.>44,1.9-13
화답송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4ㄱ)
복음 환호송요한 15,16 참조
복음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믿어라.>11,11-25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3(12),6 참조
마태 28,20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를 꽤 당혹스럽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시고 거기에서 허기를 채울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그러나 아무 열매도 없다는 사실에 곧바로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무화과가 열리는 철도 아니었는데, 아무리 시장하셨다고 하여도 너무 매정하게 보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셨을까요?
사실 이 사건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장면과 그 저주가 이루어지는 장면 사이에 의도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는 이야기를 끼워 넣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두 이야기를 연결 지어 생각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게 됩니다. 당대의 성전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제구실을 못 하는 지경에 놓여 있었는데, 그 이해 당사자들과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이 그곳을 ‘기도의 집’이 아니라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더 이상 구원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곧 구원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 버린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1코린 6,19) 이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게 된 우리 자신이, 곧 우리의 몸이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새로운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새로운 성전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혹시 환전상들과 물건을 사고파는 자들이 새 성전의 뜰에도 여전히 넘쳐 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온갖 세속적인 생각들이 우리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구원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요? 새 성전이 된 우리는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여야 합니다. 혹시 열매가 열렸을까 다가오시는 분께 실망을 안겨 드리지 않도록 날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화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