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05일 월요일

[홍]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보니파시오 성인은 673년 무렵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엑시터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된 그는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성인은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주교로 축성되어 마인츠 교회를 다스리며, 동료들과 함께 여러 지방에 교회를 세우고 재건하였다. 성인은 프리슬란트(오늘날 네덜란드) 지방에서 전교하다가 754년 이교도들에게 살해되었다. 1874년 비오 9세 교황은 보니파시오 주교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입당송 

이 성인은 하느님의 법을 위해 죽기까지 싸웠으며, 악인들의 말도 두려워하지 않았네. 그는 튼튼한 반석 위에 집을 지었네.
<또는>
지혜 10,12 참조
주님은 격렬한 싸움에서 그에게 승리를 주시어 지혜가 그 무엇보다 강함을 깨닫게 하셨네.

본기도 

주님,
거룩한 순교자 보니파시오의 전구를 들으시어
그가 입으로 가르치고 피로 지킨 신앙을 저희도 굳게 보존하며
행동으로 충실히 증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토빗은 진리의 길을 걸어왔다.>
▥ 토빗기의 시작입니다.
1,3; 2,1ㄴ-8
3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나와 함께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2,1 우리의 축제인 오순절 곧 주간절에 나를 위하여 잔치가 벌어져,
나는 음식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다.
2 내 앞에 상이 놓이고 요리가 풍성하게 차려졌다.
그때에 내가 아들 토비야에게 말하였다.
“얘야, 가서 니네베로 끌려온 우리 동포들 가운데에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잊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보는 대로 데려오너라.
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 그런다.
얘야,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마.”
3 그래서 토비야가 우리 동포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찾으러 나갔다.
그가 돌아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내가 “얘야, 나 여기 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계속 말하였다.
“아버지, 누가 우리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을 살해하여 장터에 던져 버렸습니다.
목 졸려 죽은 채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4 나는 잔치 음식을 맛보지도 않고 그대로 둔 채 벌떡 일어나
그 주검을 광장에서 날라다가,
해가 진 다음에 묻으려고 어떤 방에 놓아두었다.
5 그런 다음 집에 돌아와서 몸을 씻고 슬픔에 싸인 채 음식을 먹었다.
6 그때에 아모스 예언자가 베텔을 두고 한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의 축제들은 슬픔으로, 너희의 모든 노래는 애가로 바뀌리라.”
7 나는 울었다. 그리고 해가 진 다음에 나가서 땅을 파고 그를 묻어 주었다.
8 이웃들은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이제는 두렵지가 않은 모양이지?
전에도 저런 일 때문에 사형감으로 수배되어 달아난 적이 있는데,
또 저렇게 죽은 이들을 묻는구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12(111),1ㄴㄷ-2.3-4.5-6(◎ 1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부귀영화 그의 집에 넘치고, 그의 의로움 길이 이어지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

복음 환호송묵시 1,5 참조

◎ 알렐루야.
○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1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사도 26,19-23)와 복음(요한 10,11-16)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 기도 

주님,
복된 보니파시오가 주님 사랑으로 갖은 육신의 박해를 이겨 내게 하셨으니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에 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저희 마음도 그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우리 주 …….
<또는>
주님, 복된 순교자 보니파시오를 기리며 이 예물을 바치오니
일찍이 주님을 위하여 흘린 그 고귀한 피와 같이
이 예물도 기꺼이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16,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또는>
마태 10,39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고 비오니
저희에게 굳센 정신을 심어 주시어
저희가 복된 보니파시오처럼 언제나 주님을 충실히 섬기며
온갖 고난을 꿋꿋이 이겨 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는 바로 앞 단락에서(지난 토요일 복음 참조) 예수님의 권한에 이의를 제기한 유다 지도자들에게 당신께서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하시는지를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를 계시하시면서 그들이 문제 삼은 권한을 실제로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하십니다.
포도밭을 일군 주인은 그 밭을 소작인들에게 맡기고 멀리 떠납니다. 여기서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을, 그리고 포도밭의 관리를 맡은 소작인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주인은 자기 포도밭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종들을 보내는데,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느님에게서 끊임없이 파견된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종들은 소출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매질이나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머리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종들은 죽임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에 파견된 많은 예언자가 겪어야 하였던 수난의 역사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하여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당신 이전에 파견된 예언자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존재이심을 드러냅니다. 주인이 파견하는 마지막 인물은 ‘종’이 아니라 ‘아들’로 표현됩니다. 그것도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가져 본 적이 없는 하나뿐이고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계신 분, 하느님과 유일하고도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는 분,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며 예수님께서 어떤 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는지를 더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면, 우리 또한 그토록 귀하신 분을 온 마음으로 기쁘게 맞이하고 정성껏 모시며 사랑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내 아들이야 존중하여 주겠지.’ 하는 하느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소작인들이 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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