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2일 화요일
[자]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또는
[백]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즈카 14,5.7 참조
본기도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40,1-11
화답송시편 96(95),1-2.3과 10ㄱㄷ.11-12.13(◎ 이사 40,10 참조)
복음 환호송
복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18,12-14
예물 기도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2티모 4,8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여러분은 이 비유에 동의하십니까? 백 마리 양 가운데 하나가 사라졌다고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를 과연 칭찬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무책임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산에 방치될 아흔아홉 마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안전을 위하여 한 마리쯤은 그냥 포기하여 버리는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아흔아홉의 무리에 속한다는 안도감으로 내리는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 무리에서 벗어난 한 마리 양의 상황에 놓이더라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 양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호소할 것입니다. 목자가 찾아오리라는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예수님의 시선은 아흔아홉의 무리가 아니라, 혼자 외로이 길을 헤매고 있을 한 마리 양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새끼 때부터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기르신 당신의 양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걱정에 잠 못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양을 찾아다니셔야 합니다. 여기서 남겨질 아흔아홉 마리의 안위를 논하는 것은 비유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주님의 몫일뿐더러, 그분께서 그 한 마리를 찾겠다고 나머지를 위태롭게 방치하실 리도 없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아닌 예수님의 시선을 따라갑시다. 그분께서 관심 있게 바라보시는 그곳을 함께 바라보고,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길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서는 일에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