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3월 22일 토요일
[자]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입당송 시편 145(144),8-9
본기도
제1독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7,14-15.18-20
화답송시편 103(102),1-2.3-4.9-10.11-12(◎ 8ㄱ)
복음 환호송루카 15,18 참조
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15,1-3.11ㄴ-32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영성체송 루카 15,3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신앙생활을 중단한 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끔 이러한 말을 듣습니다.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기가 두렵다. 평소에 상황이 좋을 때는 하느님을 찾지 않다가,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하느님을 찾는 것 같아 양심에 걸린다.’ 또는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서 하느님을 찾더라도, 다시 상황이 좋아지면 하느님을 찾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아예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기를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은아들은 순수하게 아버지가 좋아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에 돌아온 것입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고 자신은 아버지의 종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작은아들이 어떤 마음으로 돌아왔는지, 그리고 큰아들이 어떤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하였는지에 상관없이 아버지는 두 아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는 정의를 넘어섭니다. 정의를 깎아내리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서가 아닙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회개의 시작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정의를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큰 차원에서 정의를 뛰어넘으십니다”(『아버지처럼 자비로워지십시오』, 생활 성서사, 48면). 우리는 정의에 묶여서 하느님의 자비를 외면하기도 합니다. 두 아들의 아버지는 참된 정의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언제나 기다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