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4월 29일 화요일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가타리나 성녀는 1347년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완덕의 길을 걷고자 일찍이 도미니코 제3회에 들어갔다. 그리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지역들 간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특히 교황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 가타리나 성녀는 1380년에 선종하였고, 1461년에 시성되었으며, 1970년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입당송
본기도
제1독서
<한마음 한뜻>4,32-37
화답송시편 93(92),1ㄱㄴ.1ㄷ-2.5(◎ 1ㄱ)
복음 환호송요한 3,14-15 참조
복음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3,7ㄱ.8-15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1요한 1,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태어난 가타리나 성녀의 삶은 단순한 헌신을 넘어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 어떤 태도와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녀가 활동하던 때 세상과 교회는 혼란과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대기근과 흑사병으로 황량해진 시에나에서 성녀는 병자들을 돌보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일부 추기경들이 1378년 선출된 우르바노 6세 교황에게 반대하여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세우며 교회에 큰 분열이 일어났을 때, 성녀는 단호하게 우르바노 6세 교황을 지지하며 교황의 정통성 확보에 이바지하였고 아비뇽으로 옮겨진 교황청이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성녀는 언제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친밀하게 대화하며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이를 세상에 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많은 비난과 저항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성녀는 단순히 교리를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병자들과 가난한 이들, 고통받는 이들에게 몸소 다가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여 이 세상에 사랑을 심으신다.”(『하느님 섭리의 대화』)라는 성녀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드릴 때 그 손길과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됩니다. 성녀는 일상에서 우리도 믿음과 사랑, 헌신과 용기로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알려 줍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큰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