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13일 수요일
[녹]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또는
[홍]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입당송 시편 74(73),20.19.22.23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었다. 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34,1-12
화답송시편 66(65),1-3ㄱㄴ.5와 8.16-17(◎ 9ㄱ과 20ㄷ 참조)
복음 환호송2코린 5,19 참조
복음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18,15-20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47(146─147),12.14 참조
요한 6,5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서는 ‘교회의 복음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스 말로 ‘교회’를 가리키는 낱말을 자주 쓸 뿐 아니라 복음서 곳곳에서 교회 공동체의 특징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마태 18,15)라는 규정은 제2성전기 유다교의 한 분파였던 쿰란 공동체의 『공동체 규칙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에세네파로 추정되는 이 종말론적 공동체는 구성원의 입회에서 추방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었지요. 이들은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의 권위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으며 본인들이 적법한 차독(대제사장)의 자손이라 생각하고 행동하였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속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들과 꼭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형제의 잘못을 공동체 전체에 알리기에 앞서 형제적 사랑으로 그의 잘못을 바로잡도록 여러 차례 권고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18,17). 이 구절은 ‘너는 이제 그 일에 상관하지 마라. 더 이상 네 책임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다른 한편 ‘이 일은 예수님만이 다루실 수 있다.’는 겸손한 의미까지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부분들의 합이 아닙니다. 교회는 봉건 시대의 권력 구조만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민주주의로 세워진 기구도 아닙니다. 교회가 힘주어 외치는 ‘시노달리타스’ 정신은 결국 교회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바탕에 둡니다.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만을 신경 쓰는 것은 시노달리타스도 아니요, 교회에 대한 사랑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은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