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2일 화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입당송 시편 86(85),3.5
본기도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5,1-6.9-11
화답송시편 27(26),1.4.13-14(◎ 13)
복음 환호송루카 7,16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4,31-37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31(30),20 참조
마태 5,9-10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나자렛 회당에 이어 카파르나움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은 이들은 놀랐습니다. 그분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루카 4,32)이라고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권위를 지니셨을까요?
우리말로 ‘권위’라고 옮긴 이 그리스 말은 ‘권한’ 또는 ‘권능’으로도 옮겨지는 낱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도 내쫓는 능력을 지니셨기 때문에, 그리고 기적을 일으키는 권능을 지니셨기 때문에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기 전에도 사람들은 그분 말씀에 놀랐습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것은 그분 말씀에 담긴 권위를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1,22)라고 말합니다. 율법 학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권위자들이었음에도 마르코 복음서는 마치 이들에게 권위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권위는 참된 권위를 뜻할 것입니다.
우리는 권위자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표현이 아닌 경우가 꽤 있습니다. 반면에 아무 직위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 앞에서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권위는 그의 인격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사랑이나 선과 같은 인류 보편 가치를 훌륭하게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그분 존재에서 나오며, 그 권위는 사랑에서 나오는 권위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