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20일 토요일
[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몇몇 실학자들의 학문적 연구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하였다. 선교사의 선교로 시작된 외국 교회에 견주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의 조선은 충효를 중시하던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와 크게 충돌하였다. 그 결과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 등으로 박해가 시작되었다. 신해 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시어 이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하여 103명을 시성하셨다. 이에 따라 그동안 9월 26일에 지냈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 전례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을 기리며, 순교자들의 피로 우리를 복음의 빛 안으로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신앙 선조들의 순교 신앙을 본받아,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로 다짐합시다.
입당송
본기도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3,1-9
화답송시편 126(125),1-2ㄱㄴ.2ㄷㄹ-3.4-5.6(◎ 5)
제2독서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8,31ㄴ-39
복음 환호송1베드 4,14 참조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9,23-26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주님의 교회를 거룩한 순교 정신으로 이끌어 주시어, 환난과 역경과 박해를 겪더라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않으며, 굳센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2. 우리나라의 순교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을 굽어살피시어,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당당히 신앙을 증언한 그들이 보편 교회에서 기념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3. 예비 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도자이신 주님, 예비 신자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이 주님 진리에 대한 믿음과 배움의 열정으로 세례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도와주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주님의 작은 교회인 가정 공동체를 돌보아 주시어, 성가정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한국 고유 감사송 1 : 선조들의 신앙>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 선조들을 복음의 빛 안으로 불러 주시어
무수한 순교자들의 피로 교회를 세우시고 자라게 하셨으며
그들이 갖가지 빛나는 덕행을 갖추고
혹독한 형벌 속에서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
마침내 아드님의 승리를 함께 누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한국 순교자들과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마태 10,3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영원한 참평화를 누리고 있는 순교자들에게서 결코 꺼지지 않는 희망을 배웁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순교자’가 되는 것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대단히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한국 순교자들의 상황을 보면, 그들은 오늘 제1독서가 말하는 것처럼 고난을 겪고 파멸에 빠진 이들, 벌받고 시험받으며(지혜 3,2-5 참조)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믿음이 없는 시선, 외적인 모습만 보는 시선, 현재가 전부인 시선으로 볼 때입니다. 순교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만을 바랐기에, 곧 믿음의 눈으로 현재를 바라보았기에 모든 것을 다르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비록 온종일 주님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질지라도(로마 8,36 참조) 그분 사랑을 확신하였습니다. 스승께서 이 길을 가셨기에 그들도 이 길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때와 같은 박해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거스르는 풍조와 죽음의 문화가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가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도 십자가는 많습니다. 날마다 그 십자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삶에서 겪는 크고 작은 개인의 고통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박해 시절의 순교가 눈물과 수고로 얼룩져 있듯이, 오늘날 우리 삶에서도 하느님 사랑을 확신하면서 그분만을 선택하는 단호함으로 어려움을 기꺼이 끌어안을 때, 진정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예이자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