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04일 토요일
[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프란치스코 성인은 1182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기사의 꿈을 안고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포로가 된 그는 아버지가 낸 보석금으로 풀려난 뒤에도 예전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1204년 중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회복된 그는 청년 시절의 해이한 생활에서 돌아서서 아버지의 재산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굳게 매달렸다. 가난을 받아들이고 복음적 생활을 하면서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그에게 젊은이들이 모여들자, 그들과 함께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세우고 복음적 가난을 실천하였다. 그는 1224년 무렵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자신의 몸에 받았는데, 그 고통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226년 선종한 그를 2년 뒤 그레고리오 9세 교황께서 시성하시고,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셨다.
입당송
본기도
제1독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주님께서 너희에게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4,5-12.27-29
화답송시편 69(68),33-35.36-37(◎ 34ㄱ)
복음 환호송마태 11,25 참조
복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10,17-24
예물 기도
영성체송 마태 5,3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시던 그날은 새로움과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먼저 새로 선출되신 교황님께서 정하신 교황명은 ‘프란치스코’였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쓰이지 않은 교황명이었습니다. 이어서 등장하신 모습도 참신하였습니다. 교황이면 으레 입는 붉은색 모제타도 쓰시지 않고, 가슴 십자가도 추기경 때 하시던 철제 십자가를 그대로 목에 거시고 군중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와 전 세계에’(Urbi et Orbi) 보내는 첫 강복을 하시기 전에 그곳에 모인 신자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시며 침묵 가운데 먼저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교황청 사도궁이 아닌 교황청을 방문하는 이들을 위한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지내셨고, 외국을 순방하실 때도 당신 가방을 손수 들고 다니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살아가시려는 모습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라고 기도하십니다.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그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기에 하느님께 의지할 줄도 모르고, 하느님이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철부지들은 스스로 약함을 인정하기에 하느님께 의지할 줄 알고 하느님을 필요로 합니다.
믿는 이는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그러하셨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신앙인인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