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1일 화요일
[백]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마르티노 성인은 316년 무렵 판노니아(현재 헝가리의 솜바테이)의 이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공부한 다음 군인이 된 그는 어느 날 추위에 떨고 있는 거리의 걸인에게 자신의 외투 절반을 잘라 주었다. 그날 밤 꿈속에 그 외투 차림의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신비 체험을 하고 나서 곧장 세례를 받았다. 그 뒤에 사제가 되었으며, 370년 무렵 프랑스 투르의 주교로 뽑혔다. 착한 목자로서 모범을 보이고, 수도원들을 세웠으며, 성직자들을 교육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397년 프랑스 중부의 캉데생마르탱에서 선종하였다. 프랑스 교회의 초석을 놓은 그는 프랑스 교회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
입당송 1사무 2,35 참조
본기도
제1독서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2,23―3,9
화답송시편 34(33),2-3.16-17.18-19(◎ 2ㄱ)
복음 환호송요한 14,23 참조
복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17,7-10
예물 기도
영성체송 마태 25,40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겸손하게 섬겨라.”라는 소제목이 달린 오늘 복음은(루카 17,7-10 참조) 조금 모질게 들립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에 비유하십니다. 종은 모름지기 주인의 호의를 기대하기보다는 철저히 종으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라고 하신 예수님의 또 다른 말씀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왜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잘못된 전제를 바로잡으시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 전제의 오류’라는 것이 있습니다. 논리가 옳게 전개되지만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경우에 자세히 살펴보면 기본 전제가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인과응보 사상에 깊이 젖어 있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서 하느님께 그에 맞는 보상을 받겠다는 것이지요. 크게 나무랄 만한 태도는 아닐 수 있지만,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크나큰 호의에 바탕을 둔 계약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어릴 적 세뱃돈을 많이 받아 어머니에게 맡긴 적이 있습니다. 며칠 뒤 그에게 돈을 달라고 하였더니 다 쓰고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울며 따졌더니 어머니는 “그래, 그러면 그동안 내가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준 거 다 내놔!” 하셨습니다. 어린 저였지만 어머니가 그동안 키워 주신 은혜가 더 큰 것을 알기에 눈물을 닦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이라 하신 것에 섭섭해하기보다는 먼저 나에게 부어진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 돌아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