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0일 목요일
[녹]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입당송 예레 29,11.12.14 참조
본기도
제1독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2,15-29
화답송시편 50(49),1-2.5-6.14-15(◎ 23ㄴ)
복음 환호송시편 95(94),7.8
복음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19,41-44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73(72),28
마르 11,23.24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이번 한 주 동안 우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의 여정을 복음으로 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수난하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예수님의 마음을 엿보게 됩니다. 독백과도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루카 19,42)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19,42).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도시가 평화를 알지 못하고 평화를 볼 눈이 없음에 깊이 탄식하십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입니다(이사 32,17 참조). 그리고 정의는 ‘그의 것을 그에게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마땅한 흠숭을 드리고, 내 이웃을 그 존엄에 맞갖게 존중해 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러나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평화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예수님을 없애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지키려 합니다. 평화와 어울리지 않는 수단으로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1219년, 십자군 전쟁의 역사 속 가장 치열하였던 시기에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 하나가 이슬람 진영 한복판에 찾아들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그는 이 전쟁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며 하느님의 뜻은 오로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형제적 삶을 사는 데 있음을 선포하고자, 무장하지 않은 ‘평화의 사절’로 이 전쟁에 뛰어든 것이었습니다.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오늘날까지 ‘거룩한 땅’ 이스라엘에 머무르며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 있는 성지들을 돌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평화의 발걸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