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8일 일요일
[백]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하는 축일이다. 1921년 이 축일이 처음 정해질 때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이었으나, 1969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로 옮겼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해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부터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운데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가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 전례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나자렛의 성가정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을 가정의 중심에 모시고 가족이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또한 해체된 가정과 위기를 겪는 가정에 주님께서 은총을 내리시어,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입당송 루카 2,16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3,2-6.12-14
화답송시편 128(127),1-2.3.4-5(◎ 1)
제2독서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3,12-21
복음 환호송콜로 3,15.16
복음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2,13-15.19-23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성가정의 모범을 따르려는 교회를 굽어보시어,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세상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의 향기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분쟁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 이 세계를 굽어살피시어, 인류가 지구촌의 한 가족으로 서로 화합하고 일치하며,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이루게 하소서.
3. 어려운 가정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이신 주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들을 살펴 주시어, 그들이 성가정의 모습을 본받아 힘을 얻고, 이웃들과 더불어 기쁘게 살아가게 하소서.
4.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의 샘이신 주님, 주님께서 주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저희를 돌보아 주시어, 기쁜 일은 기억하고 슬픈 일은 이겨 내며,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주님 성탄 감사송 1 : 빛이신 그리스도>영성체송 바룩 3,38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성가정을 통하여 참된 삶의 본보기를 보여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노래합시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는 사람이 되어 오실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이 가정은 위협과 적대감에 쫓기며 두려움, 불확실성, 시련으로 이어지는 난민의 고통을 경험합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헤로데는 아기 예수님을 놓치고 나서 바로 포기하지 않고 군사들을 보내 줄곧 이 가족을 추격하였다고 합니다. 이 가족은 헤로데의 군사들을 피하여 여기저기서 몇 시간, 하루, 며칠, 길게는 6개월을 머물렀고, 때로는 나무 밑에서 때로는 어느 집에서 머물렀으며, 때로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성가정은 이집트에서 3년 11개월 정도 머물렀다고 전해집니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낯선 나라를 떠돌아다녀야 하였던 이 부부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을까요? 마리아와 요셉이 하느님께 순종한 결과는 이렇게 시작하여 평생 이어집니다. 그들은 그 모든 결과를 감수하면서 늘 하느님께 충실하였고, 이 가족의 순종은 우리를 모두 구원으로 이끌었습니다.
오늘 복음으로 성가정의 여정에 함께하면서 이주민과 난민들의 현실을 떠올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되뇌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발걸음에는 수많은 발걸음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떠나야만 하는 수많은 가족의 발자취를 봅니다. …… 많은 경우, 이 떠남에는 생존이라는 한 가지 이름만 있습니다. …… 이 시대의 헤로데들로부터 살아남으려는 것입니다”(2017년 성탄 전야 미사 강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이주민이 되심으로써 인간이 위험에 놓인 곳, 거부와 적대적 위협을 경험하는 곳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보여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