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04일 수요일
[녹]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106(105),47
본기도
제1독서
<인구 조사를 하여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24,2.9-17
화답송시편 32(31),1-2.5.6.7(◎ 5ㄹ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0,27 참조
복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6,1-6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31(30),17-18 참조
마태 5,3.5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알았어요. 알았다니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는 합니다. 특히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 더 그렇지요. 어쩌면 이 말의 속뜻은 ‘더는 듣고 싶지 않다.’일지 모릅니다. 또한 우리는 때때로 “알았어요.” 한마디로 대화를 닫아 버리고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우리가 성숙해지는 것을 막고, 마음을 닫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서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처음에는 감탄하지만 곧 그분의 출신과 신분을 문제 삼으며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안다고 생각하였지만, 정작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하느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이성만으로 온전히 파악될 수 없는, 무한히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지혜의 말은 “너 자신을 알라.”입니다. 이런 겸손이야말로 신앙인의 참된 자세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면, 더 이상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요. 이에 오늘 복음 환호송은 이렇게 전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그러므로 신앙 안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오늘 영성체송이 그것을 일깨워 줍니다.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바라고 청하는 이는 자만하거나 고집스럽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가장 큰 허물은, 내 뜻이 전부인 줄 아는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화답송을 되뇌어 봅니다. “주님, 제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