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14일 토요일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치릴로 성인과 메토디오 성인은 형제로,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나 튀르키예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을 받았다. 두 형제는 후대에 ‘키릴’ 문자로 불리는 글자를 만들어 전례문들을 슬라브 말로 옮겼고, 체코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에게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며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로마로 돌아간 다음, 치릴로 성인은 수도 서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69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메토디오 성인은 교황 특사로 모라비아에서 활동하다가 벨레흐라드에서 885년 무렵 선종하였다.
입당송
본기도
제1독서
<예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12,26-32; 13,33-34
화답송시편 106(105),6-7ㄱ.19-20.21-22(◎ 4ㄱ)
복음 환호송마태 4,4
복음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8,1-10
예물 기도
영성체송 마르 16,20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가량을 먹이신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주님의 거침없는 능력에 놀라고, 다시 한번 그 능력에 기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 복음 이야기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와 능력 자체를 크게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또한 그분께서는 신이셔서 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수긍합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지금의 ‘나’에게도 미친다는 사실, 곧 나도 그 사천 명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먼저 군중의 배고픔을 알아채시지만 제자들은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마르 8,4)라고 대답합니다. 어쩌면 제자들의 반응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태도에서 믿음의 문턱이 생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현실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은총은 곱셈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어놓을 때만, 주님의 은총이 곱해져 결실을 맺습니다. 우리 눈에 하찮아 보이는 작은 노력일지라도, 주님께서는 결코 무시하시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시 말하여 0에는 무엇을 곱해도 결과가 0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오늘 하루, 우리도 결심해 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기도 한 번, 용서 한 번, 감사 한 번, 작지만 끈기 있는 그 시도들이 결국 일곱 바구니의 결실로 돌아오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