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18일 수요일
[자] 재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교회가 이날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는 가르침을 깨닫게 해 준다. 재의 수요일에는 단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킨다.
오늘 전례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는 재의 예식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께 간절히 청합시다. “저희가 모르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뉘우치며 살고자 하오니, 갑자기 죽음을 맞지 않게 하시고, 회개할 시간을 주소서.”
입당송 지혜 11,23.24.26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2,12-18
화답송시편 51(50),3-4.5-6ㄱㄴ.12-13.14와 17(◎ 3ㄱ 참조)
제2독서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5,20─6,2
복음 환호송시편 95(94),7.8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6,1-6.16-18
재의 축복과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
<또는>
<또는>
첫째 따름 노래
둘째 따름 노래 요엘 2,17; 에스 4,17⑩ 참조
셋째 따름 노래 시편 51(50),3
응송 바룩 3,2; 시편 79(78),9 참조
갑자기 죽음을 맞지 않게 하시고, 회개할 시간을 주소서. *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구하소서.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의 샘이신 주님, 하느님과 참된 화해를 이루도록 초대된 교회를 굽어살피시어, 이 은혜의 때에 진심으로 회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이 땅의 정치인들을 이끌어 주시어,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많은 이에게 이로운 정책을 세우며, 공동선이 실현될 수 있게 하소서.
3.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의 주님,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보살펴 주시어, 주님 안에서 위로받고 평화를 찾게 하시며, 사회의 보살핌 속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소서.
4. 본당 사도직 단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진리이신 주님,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저희 본당 사도직 단체의 모든 구성원을 굽어살피시어, 절제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복된 부활을 준비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3 : 절제>영성체송 시편 1,2-3 참조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바오로 사도는 간곡히 권고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위선자들처럼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우셋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당신 소유인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청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파견 때 사제는, 교우들을 바라보고 서서 그들을 향하여 팔을 펴 들고, 이 기도를 바친다.>오늘의 묵상
“Ecce homo.”(에체 호모) 매를 맞으시고 초라해지신 예수님을 빌라도가 군중 앞에 내보이며 던진 이 말은, ‘이 사람을 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사람이다.’로 옮깁니다. 라틴 말 ‘ecce’가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존재의 실재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문법이 아니라, 이 말이 가리키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입니다.
과연 무엇이 사람이라는 것일까요? 상처투성이가 되신 예수님, 아무 힘도 없이 조롱당하시는 그분을 두고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서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결코 자신의 힘만으로는 완전에 이를 수 없지만, 완전을 꿈꾼다는 점에서 더욱 좌절할 수도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짓고 싶어서 짓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없이 넘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 돼.”라며 자책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그렇게 넘어질지라도 우리가 당신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십니다. 넘어지는 것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cce homo.”(이것이 사람이다)
자신이 얼마나 자주 넘어지는 존재인지 절실히 깨닫는 그 순간,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는 하느님의 물음에 비로소 진심으로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고백이 바로 신앙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넘어지는 사람으로서, 처절히 자신을 마주한 사람으로서 맞이해야 합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머리에 재를 얹으며 듣는 주님의 말씀에 깊이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