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27일 금요일
[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입당송 시편 25(24),17-18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18,21-28
화답송시편 130(129),1-2.3-4.5와 6ㄴㄷ-7ㄱ.7ㄴㄷ-8(◎ 3)
복음 환호송에제 18,31 참조
복음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5,20ㄴ-26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영성체송 에제 33,1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는(마태 5,23-24 참조) 오늘 복음은 사순 시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자주 마주하는 권고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왜 내가 먼저 화해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먼저 하느님께 용서받고 화해된 이들이기에, 우리가 먼저 화해에 나서야 한다고 배웁니다. 하느님 앞에서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런 우리를 하느님께서 먼저 품어 주셨기에, 우리가 고집부릴 명분이 없다는 것이지요. 현실적으로도 정말로 상대가 백 퍼센트 잘못하였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내 잘못이 더 커서 관계가 어그러진 경험도 있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용서와 화해를 말씀하시는 까닭은 다만 의무나 도덕적 으로 마땅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며, 우리 안의 굳은 마음이 풀려야 우리가 살 수 있음을 아시기 때문은 아닐까요? 한 가지 실험을 해 봅시다. 두 주먹을 힘껏 쥐어 보십시오. 그 상태에서 웃어 보십시오.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마음도 그렇습니다. 미움과 원망을 움켜쥐고 있는 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화해를 권하시는 것은 다만 착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먼저 자유롭고 행복해지기를 바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관계라는 결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미워하는 마음부터 내려놓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곧 우리 저마다의 삶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나는 죄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죄인이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영성체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