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28일 토요일
[자]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입당송 시편 19(18),8
본기도
제1독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26,16-19
화답송시편 119(118),1-2.4-5.7-8(◎ 1 참조)
복음 환호송2코린 6,2 참조
복음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5,43-48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영성체송 마태 5,48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사순 시기를 맞아 날마다 계속되는 용서와 화해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마음 한편에서는 ‘그래 용서해야지.’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니 저 사람이 명백히 잘못하였는데도, 나보고 반성하라는 말인가?’ 심지어 오늘 복음에서는 아예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이에 ‘용서’에 관한 옛 수도승의 전승 하나를 들려드립니다. 하루는 어린 수도승이 대수도승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웃을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가 제 뺨을 일흔일곱 번 때렸습니다. 몇 번을 용서해야 할까요?” 그러자 대수도승이 말합니다. “일흔여섯 번 용서하십시오.” 그러자 어린 수도승이 다시 묻습니다. “뺨을 맞은 건 일흔일곱 번인데 왜 일흔여섯 번만 용서하라 하십니까?” 대수도승이 답합니다. “일흔일곱 번이나 뺨을 맞는 당신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나머지 한 대는 그냥 맞으십시오.”
우리는 용서를 이야기할 때, 자신이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기며 용서를 ‘베푸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러한 생각에 따끔한 한마디를 합니다. 내가 상대를 참아 주는 것 같지만, 일이 그렇게까지 된 데에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원수가 되었다면 그 책임이 오직 상대에게만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누군가 원수처럼 여겨질 때 이것도 기억합시다. 우리가 누군가를 화나고 슬프게 한다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바로 하느님께서도 화나시고 슬프시게 하는 것임을 말입니다. 우리가 형제자매들과 싸울 때 가장 마음 아파하시는 분은 부모님이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마지막 부분, 우리를 향한 이 부르심에 응답하였으면 합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