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18일 수요일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69(68),14
본기도
제1독서
<땅을 다시 일으키려고 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49,8-15
화답송시편 145(144),8-9.13ㄷㄹ-14.17-18(◎ 8ㄱ)
복음 환호송요한 11,25.26 참조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5,17-30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영성체송 요한 3,1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기셨다는 이유로, 또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 부르며 당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다는 이유로 그분을 죽이려 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인간의 입에 올리는 것조차 죄로 여겨지던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며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신 일은 당시 사람들에게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복음에 자주 나오는 안식일 논쟁을 떠올리면, 왜 예수님께서 굳이 충돌을 받아들이시면서까지 안식일에 치유하셨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마치 ‘일부러’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신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전하는 안식일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입니다. 병자를 일으키시는 치유의 행위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창조이며, 고통에서 해방하는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 주신 것은 안식일이야말로 하느님의 일, 곧 창조와 구원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 치유 행위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이루는 깊은 일치를 드러내는 표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분은 율법을 어기는 이,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모욕하는 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안식일이 지닌 창조와 구원의 의미는 이제 ‘주일’ 안에서 더욱 충만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룩한 주일을 지낼 때마다 우리도 하느님의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에 초대받음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