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15일 수요일
[백]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18(17),50; 22(21),23
본기도
제1독서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5,17-26
화답송시편 34(33),2-3.4-5.6-7.8-9(◎ 7ㄱ)
복음 환호송요한 3,16 참조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3,16-21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요한 15,16.19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성경 전체에서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오늘 복음의 이 구절 안에는, 우리의 신앙을 떠받치는 세 가지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 사랑하[셨다.]”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대상은 ‘잘난 사람’, ‘의로운 사람’만이 아니라 죄로 흔들리고 방향을 잃은 인간까지 포함한 ‘온 세상’입니다.
둘째, “너무나 사랑하[셨다.]”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조건 없이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광야에서 구리 뱀을 바라보기만 해도 살아났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생명이 열리게 하십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자격이나 조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강렬한 구원 의지가 먼저입니다.
셋째, “외아들을 내주[셨다.]”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것을 온전히 내어놓으십니다. 사람이 되어 오셔서, 그 목숨까지 내주십니다. ‘이만큼이면 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전체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마음 깊이 체험하지 못하면, 신앙은 ‘노력만 남은 의무’가 되기 쉽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도 공허함이 남고, 기쁨보다 부담이 앞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랑을 ‘증명하려’ 하기보다, 먼저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정말 그 사랑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 사랑의 힘이 삶을 새롭게 하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이러한 성찰로 우리를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