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22일 수요일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71(70),8.23
본기도
제1독서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8,1ㄴ-8
화답송시편 66(65),1-3ㄱㄴ.4-5.6-7ㄱ(◎ 1)
복음 환호송요한 6,40 참조
복음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6,35-40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어느 누구도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고통이라도 그 의미와 열매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두 사람의 고통은 겉으로는 같아 보였지만, 한 사람에게는 절망과 저주, 다른 한 사람에게는 회개의 보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통은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구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생명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철저한 순종으로 아버지와 하나가 되시어,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겪으신 고통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당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십니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요한 6,38). 그리고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께서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6,39)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일치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사람들과 가지는 관계 안에서, 자신을 거저 내주는 친교의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은총을 체험하지 못한 채, 영적 목마름 속에서 삶의 고통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고통도 하느님의 뜻에 하나 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생명을 구하는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뜻’에 ‘나의 뜻’을 맞추고자 할 때, 우리는 그분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뜻에 내 마음을 온전히 일치시킬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