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28일 화요일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또는
[홍] 성 베드로 샤넬 사제 순교자 또는
[백]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 사제
입당송 묵시 19,7.6 참조
본기도
제1독서
<그들은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11,19-26
화답송시편 87(86),1-3.4-5.6-7(◎ 117〔116〕,1ㄱ)
복음 환호송요한 10,27 참조
복음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10,22-30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루카 24,46.26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믿는 이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성전 봉헌 축제로 시간 배경이 바뀌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때는 겨울이었다”(요한 10,22). 이는 계절을 알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유다 지도자들의 마음이 싸늘해지고 그분의 죽음이 가까워짐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예수님과 관계를 올바로 맺지 못할 때, 우리의 신앙도 겨울처럼 차가워질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둘러싸고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10,24)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결국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말해 달라는 자기중심적 요구에 가깝습니다. 메시아라면 모세처럼 위엄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을 ‘메시아답지 않은’ 분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믿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에게는 ‘받아들이는 태도’, 곧 관계 안에 머무르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신이 세운 기준에만 매달려 그분을 바라보았기에,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양은 목자를 알고 목자의 인도를 따를 때 안전할 수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기준, 내 이익, 내 안정만 붙들고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만든 울타리만 지키는 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한]다”(10,28). 믿음은 결국, 그분의 손안에 머무르느냐 머무르지 않느냐, 곧 받아들임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있습니까? 내 기준, 내 욕심, 자존심입니까? 아니면 목자이신 주님의 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