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또는
[백] 카시아의 성녀 리타 수도자
입당송 묵시 1,5-6 참조
본기도
제1독서
<예수는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25,13ㄴ-21
화답송시편 103(102),1-2.11-12.19와 20ㄱㄴㄹ(◎ 19ㄱ)
복음 환호송요한 14,26
복음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21,15-19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요한 16,13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당신을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경상도 남편을 둔 아내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아내가 평소에 사랑 표현에 인색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옛날 옛적에 ‘사랑해’와 ‘안 사랑해’가 살았대. 그런데 ‘안 사랑해’가 죽고 말았대. 그럼 누가 남았게?” 아내는 “사랑해.”라는 말을 기대하였지만, 남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니 뭐 잘못 무긋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요. 사랑의 말은 상처를 낫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 물으시며 베드로에게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것을 세 번의 사랑 고백으로 덮어 주시며 사랑의 실패를 치유하시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시는 것을 넘어, 사랑을 표현하시는 것을 넘어, 사랑을 확장시키는 데로 나아가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 뒤에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사명이 따라옵니다(21,16-17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베드로 사이의 사랑이 그 안에만 갇히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를 넘고, 나의 공동체를 넘어서 심지어 나의 원수에게도 이르러야 합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거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양들임을 발견하고 돌보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21,15)라고 고백합시다. 그리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데만 머물지 말고, 주님께서 저마다에게 주신 사명을 실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