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28일 일요일
[녹]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한국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이나 이날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이날 교회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 전 세계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한다. 교황 주일에는 교황의 사목 활동을 돕고자 특별 헌금을 한다.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3주일이며 교황 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묻혔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사람들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가기로 다짐하며, 우리 시대의 예언자요 목자이신 교황님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입당송 시편 47(46),2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이니, 그곳에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4,8-11.14-16ㄴ
화답송시편 89(88),2-3.16-17.18-19(◎ 2ㄱ)
제2독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6,3-4.8-11
복음 환호송1베드 2,9 참조
복음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10,37-42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참목자이신 주님, 교황 주일을 맞은 교회를 살펴 주시어, 교회가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복음을 실천하라는 교황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전쟁과 폭력으로 어지러운 이 세상을 살펴 주시어, 열린 마음과 복음적 겸손으로 참평화가 이루어지고, 전쟁의 명분과 이득에 쉽게 외면당하는 가장 약한 이들의 생명이 보호되며, 평화의 외침이 열매 맺게 하소서.
3.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이신 주님,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하시며, 저희가 그들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게 하소서.
4. 세대 간의 화합을 위하여 힘쓰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근원이신 주님, 젊은이들에게 인내와 지혜를 주시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게 하시고, 소외와 배척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2 : 구원의 신비>영성체송 시편 103(102),1
요한 17,20-2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우리는 죄에서 죽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께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당신께 합당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주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명심하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합당하게 살아가기로 다짐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 얼핏 차갑게 들리는 이 말씀 속에는 급진적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질서, 혈연과 그에 따른 기대, 보호와 인정의 체계가 더 이상 궁극적 기준이 아니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합당함’은 개인의 완전함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알아보고 응답하는 순발력을 가리킵니다. 그 응답은 때로 가족의 시선과 어긋나기도 하지요. 가족의 자랑이 아닌 실망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 기존의 관계와 질서는 흔들립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10,38). 십자가는 기존의 관계와 질서를 깨뜨리고 우리 마음과 생각을 흔드는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자리를 잃어 가는 느낌, 안전한 자리에 남아 있으려는 본능과 복음을 향하여 걸어가라는 부르심 사이의 갈등, 예수님께서는 그 상실감과 갈등을 피하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오히려 당당히 맞서라고 하십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10,39). 목숨은 하나뿐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숨이 단순히 이어지는 것만이 다는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지키려다 잃고 내려놓았다가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 목숨일 테지요. 이 말씀은 지켜야 할 목숨의 가치에 대하여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 것일까요?
이러한 거창한 이야기를 뒤로하고, 오늘 복음이 마지막에 남기는 것은 시원한 물 한 잔입니다. 누군가를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유로 맞아들이는 작은 손길을 이야기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급진적 요구를 말하면서도 작은 친절을 잊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문은 물 한 잔의 배려 속에서도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