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1일 수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47(46),2
본기도
제1독서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5,14-15.21-24
화답송시편 50(49),7.8-9.10-11.12-13.16ㄴㄷ-17(◎ 23ㄴ)
복음 환호송야고 1,18 참조
복음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8,28-34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03(102),1
요한 17,20-2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복음 말씀을 글로 대하다 보면 당시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낯선 지명이나 등장인물의 뜻밖의 말과 행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짧은 호흡으로 전개되는 사건의 속도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어려움을 마주합니다.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 마귀 들린 사람 둘, 그들이 예수님과 주고받는 대화, 그리고 갑작스러운 돼지 떼의 죽음과 고을 주민들의 반응까지, 여러 가지 상황이 연이어 펼쳐집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미궁에 빠뜨리는 물음은 과연 이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두 가지 장면에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첫 번째는 마귀 들린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아본 그들은 그분의 칭호를 대담하게 부르며 외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마태 8,29) 그들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합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자신들의 자리가 위협받는 것이 불편하고 못마땅하였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고을 주민들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의 한마디에 마귀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예수님께 그 고장을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마귀를 쫓는 놀라운 기적보다 경제적 손실을 입은 것이 그들에게는 더 큰 문제였나 봅니다. 그들 또한 예수님과 관계를 끊고자 합니다.
너무 오래 어둠 속에 머물러 있던 탓일까요. 마귀들은 돼지 떼와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느새 고을 주민들의 마음에 다시 자리 잡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돼지’, 곧 세속적 가치나 소유물을 잃을까 두려워 예수님과 맺은 관계를 부인하려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