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6일 목요일
[녹]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또는
[백] 카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17(16),15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26,7-9.12.16-19
화답송시편 102(101),13-14ㄱㄴ과 15.16-18.19-21(◎ 20ㄴ)
복음 환호송마태 11,28 참조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11,28-30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84(83),4-5 참조
요한 6,56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 일화에서 인간 삶의 부조리를 떠올립니다. 신들의 노여움을 산 시시포스는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면 바위가 다시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형벌을 받습니다. 이는 날마다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카뮈는 이 의미 없는 반복과 허무함을 극복하려면 삶의 허무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거나 상황을 부정하지 말고, 주어진 삶을 용기 있게 마주하라고 초대합니다.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마주할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한 시시포스’를 마음에 그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보다 이러한 인간의 처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접근은 카뮈와 달랐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주님께서는 우리를 가혹한 운명의 산에 홀로 남겨 두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곁에 머무르시며 쉼의 자리를 마련하시고, 그곳이 더 이상 형벌이 아닌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 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몸소 그 형벌 같은 삶을 살아 내심으로써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인간은 참된 행복, 그 궁극적 ‘좋은 삶’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카뮈가 꿈꾸던 ‘행복한 시시포스’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