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05일 월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또는
[백]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동정
입당송 에스 4,17②-③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1,6-12
화답송시편 111(110),1ㄴㄷㄹ-2.7-8.9와 10ㄷ(◎ 5ㄴ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3,34 참조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10,25-37
예물 기도
영성체송 애가 3,25
1코린 10,1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시험을 볼 때 파악해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출제자의 의도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준비해 놓고 정작 엉뚱하게 답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교사의 질문을 들으신 예수님의 되물음이 흥미롭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루카 10,26)
물론 율법 교사는 옳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율법 교사는 예수님을 시험하려 하였습니다. 그랬으니 누가 자기의 이웃인지 다시 물었지요. 의도가 뻔한 그의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비유의 끝에 예수님께서는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는지 물으십니다. 이에 율법 교사는 ‘사마리아인’이라는 쉬운 답을 두고 굳이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10,37)이라고 긴 답을 합니다. 이는 답을 알면서도 당시 유다인들의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인을 인정하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것 같아 회개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10,37)라고 하실 뿐입니다.
답을 제대로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 앎을 온전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 내 이웃인지, 누가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살피기에 앞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먼저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지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