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23일 월요일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또는
[홍] 성 클레멘스 1세 교황 순교자 또는
[백] 성 골룸바노 아빠스

입당송 시편 85(84),9 참조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 당신께 돌아오는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본기도 

주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시어
저희가 거룩한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주님의 자비로 더욱 큰 은총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들의 이마에는 그리스도와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3.4ㄴ-5
나 요한이 1 보니 어린양이 시온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2 그리고 큰 물 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그 목소리는 또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3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4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
5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24(23),1-2.3-4ㄱㄴ.5-6(◎ 6 참조)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복음 환호송마태 24,42.44 참조

◎ 알렐루야.
○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주님의 명에 따라 바치는 이 거룩한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계명을 지켜
주님의 사랑에 합당한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17(116),1-2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또는>
마태 28,20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성체를 모시고 기뻐하오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 곁에 머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가난한 과부의 렙톤 두 닢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풍족한 사람들과 과부가 봉헌한 예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마음에 집중해 보고 싶습니다.
꼭 재물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를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것은 그것의 주인을 명확히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봉헌이란 온전히 내 소유인 것을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잠시 맡겨 두신 것을 하느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봉헌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봉헌은 우리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봉헌함으로써 그분께서 우리 삶의 참된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복음 속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칭찬하시는 까닭은 빈곤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재물을 봉헌하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과부가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께서 나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가진 것이 부족해서’,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등의 이유를 앞세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바치는 것의 무게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의 주인을 알아보고 그분께서 주인이시라고 고백하는 마음의 무게를 바라보시기 때문입니다. 

(허권범 프란치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