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07일 토요일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입당송 사도 1,14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바오로는 로마에서 지내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28,16-20.30-31
화답송시편 11(10),4.5와 7(◎ 7ㄴ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6,7.13 참조
복음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21,20-25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요한 16,14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요한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두 사도를 보여 줍니다. 그 둘은 주님께서 자주 함께하셨고 주님 승천 뒤에도 자주 함께 움직이던 제자들입니다(사도 3―4장 참조). 마지막 만찬 때는 요한을 시켜 주님께 여쭈었던 베드로(요한 13,23-25 참조)가 이제는 자신이 직접 주님께 여쭙고 요한은 침묵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요한이 살아 있기를 바라실 만큼 주님께 그는 각별한 존재였을까요? 그런데 그가 죽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근거 없는 추측이라고 요한 스스로 딱 잘라 말합니다. 실제로 요한은 사도들 가운데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주님 승천 뒤 칠십여 년을 더 살다가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오늘 복음의 구절이 신앙인의 삶에서 보이는 두 가지 모습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곧 베드로는 지상의 시간에 남아 있는 삶을, 요한은 영원한 하늘 거처에 사는 삶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요한 복음 강해』 참조). 다시 말하여 베드로는 순교의 길로 주님을 따르도록 불렸고, 요한은 높은 곳에서 말씀의 신비를 꿰뚫는 관상이 완전해지도록 당신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설교집』 참조).
예수님께서는 어제 복음에서 베드로에게 중대한 사명을 부여하시고 그를 새롭게 부르셨는데, 오늘 복음에서는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을 새롭게 부르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21,22)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마땅히 고통이 따르겠지만 저마다 가는 길은 다르니, 남의 사정을 깊이 알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길에 충실해야 합니다.